전체 글
-
간다라 미술, 실크로드를 따라 신라에 이르다 - 세계사 속 예술의 길목에서 본 한국사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6. 23:26
간다라 미술, 헬레니즘과 불교가 만나다간다라 미술은 간단히 말해 헬레니즘과 불교가 융합된 고대 예술입니다. 간다라는 오늘날 파키스탄 북서부와 아프가니스탄 동부 지역을 가리키는 고대 지명으로, 이곳은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이후 헬레니즘 문화가 깊이 뿌리내린 곳이었습니다. 이후 마우리아 왕조를 거쳐 쿠샨 왕조에 이르면서 불교가 국교로 자리잡게 되었고, 간다라는 불교 예술의 중심지로 급부상합니다.간다라 미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불상을 처음으로 인간의 형상으로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전까지 불교는 부처의 초상화를 금기시했고, 대신 보리수나 법륜, 연꽃 등의 상징물로 대체했습니다. 그러나 간다라에서는 아폴론과 같은 그리스 조각의 이상적인 인체 비례를 바탕으로 섬세한 불상이 조형되기 시작..
-
청나라의 몰락, 조선의 운명을 흔들다 - 제국의 붕괴와 한반도의 격동기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6. 20:25
청나라의 몰락 - 동아시아 질서의 붕괴 신호청나라의 몰락은 단순히 한 제국의 붕괴가 아니라 조선 사회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질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침입과 내적인 부패, 농민 반란, 그리고 결국에서는 신해혁명(1911)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17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해온 청의 권위를 무너뜨렸습니다. 청나라의 위상은 오랫동안 조선에 정치적, 문화적 기준점이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 멸망 이후 청을 새 세계질서의 중심으로 받아들이며 '사대외교'를 펼쳐왔고, 군사적 보호와 문화적 위계를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아편전쟁(1840) 이후 청이 연이어 서양에 패배하면서 조선 지식인 사회 내에서도 '중화(中..
-
조선왕조의궤, 의례의 기록을 넘어선 세계사적 문화유산의 위엄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5. 23:02
조선왕조의궤, 국가 의례를 예술로 기록하다조선왕조의궤는 조선 시대 국가 의례를 그림과 글로 정교하게 기록한 일종의 실록입니다. 왕의 즉위, 혼례, 장례, 사신 접대, 궁궐 공사 등 국가적인 중요 행사의 전 과정을 문서화했으며, 그 내용은 그림(도설)과 글(기록)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궤는 단순한 문서가 아니라 국가 체제의 운영 방식을 시각적으로 고스란히 담아낸 '시각 기록물'이자 '기억의 예술'입니다.가장 오래된 의궤는 17세기 초부터 제작되었으며, 이후 조선 왕실에서는 정례적으로 위궤를 편찬했습니다. 이를 위해 별도로 도화서의 화원이 동원되었고, 종묘, 사직, 경복궁, 창덕궁 등에서 이루어지는 주요 행사의 장면을 섬세한 채색화로 담았습니다.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궁중의 의식, 각기 다른 복식과 기물의 ..
-
신라, 북방 유목의 후예인가: 한국사 속 유목민 계열설의 실체를 세계사 속에서 다시 읽다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4. 23:17
신라와 북방 유목민족설, 어떻게 제기되었는가?신라가 북방 유목민족 계열이라는 주장은 한국 고대사 연구에서 비교적 이질적인 관점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단순한 추측이 아닌 다각적인 사료와 고고학적 정황, 문화적 특성, 언어학적 단서들에 기반한 이론입니다. 신라가 고대 한반도 남부의 농경 중심 문화권에 속했다는 기존 인식에 반해, 일부 학자들은 신라의 초기 지배층이 북방계 유목 문화를 전유하거나 이주민일 가능성에 주목해 왔습니다.그 대표적 사례로 고려대의 노태돈 교수, 일본의 오노데라 요시노부 교수 등은 고대 신라의 권력 구조, 장례 문화, 무기 체계, 언어 유사성 등에서 북방 유목민의 특성을 지적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고구려와의 문화적 유사성, 신라 초기 왕족의 명칭과 계보, 언어 구조 등..
-
성리학, 동아시아를 관통한 정신의 문명 - 조선의 국가 이념에서 문명 질서까지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3. 22:27
성리학의 도래: 송대 중국에서 조선으로의 사상 전파성리학은 조선 사회의 근간을 이룬 정신이자 동아시아 전체를 관통한 문명 철학이었다. 이 사상은 송나라 주희(朱熹)에 의해 집대성되었으며, 유교 경전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이(理)'와 '기(氣)'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도입해 인간과 자연, 사회 질서를 설명하는 철학 체계를 구축했다. 성리학은 단순한 도덕 윤리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를 포괄적으로 해석하려는 이론적 시도였다.이러한 사상은 원나라와 명나라를 거치며 점차 국가 이념으로 정착되었고, 14세기 말 조선을 건국한 유학자들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통치철학으로 받아들여졌다. 조선은 고려 말의 불교 중심 사회에서 성리학 중심의 유교 국가로 전환하면서, 성리학을 단지 사상적 기반으로 삼은 것이 ..
-
조선의 개화와 외교의 시작: 수신사, 영선사, 보빙사의 세계사적 의미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2. 12:37
개항과 조선의 첫 외교 사절단, 수신사조선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면서 개항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근대화와 국제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첫 번째 수신사가 파견되었습니다. 1876년부터 1882년까지 파견된 수신사는 모두 세 차례로, 1차는 김기수가, 2차는 김홍집이, 3차는 박영효가 이끌었습니다. 이들은 일본의 근대화된 사회, 군사력, 경제 체제를 직접 목격하며 조선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일본이 서양식 군사제도와 산업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사실을 파악한 조선은 개화 정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파견은 단순한 외교 임무를 넘어 일본의 서구화 과정을 학습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서양 문물의 도입과 개화사상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
-
산업혁명과 제국주의 시대, 조선은 어떤 길을 걸었는가: 세계사 속 격변의 19세기와 조선의 대응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2. 07:03
산업혁명, 유럽을 공장에서 세계로 이끌다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사적 전환점입니다. 전통적인 수공업이 중심이던 산업 구조는 면직물 공업의 기계화와 함께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손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가 등장했고, 이어서 수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증기기관이 본격적으로 공장에 도입되었습니다. 이로써 생산은 이전보다 수십 배 이상 증가했고, 도시 중심의 대규모 공장이 속속 들어섰습니다.이러한 기술 혁신은 단순히 물건을 대량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차, 증기선, 도로망 등 교통수단의 혁신, 철강 산업과 광업의 비약적 발전은 유럽 각국에 산업화의 열풍을 일으켰고, 생산된 제품을 전 세계로 판매하기 위한 시장 확보 경쟁은 제국주의로 이어졌습니다. 유럽 각국은..
-
메이지 유신 vs. 조선의 개혁, 왜 그 결과는 달랐는가? _ 일본과 조선,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갈라지다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1. 22:07
동아시아를 덮친 문명의 충격, 양국의 선택19세기 중반, 동아시아는 격랑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 에도만에 흑선(黑船)을 끌고 나타나 개항을 요구한 사건은 동아시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습니다.중국은 아편전쟁(1840) 이후 서구 열강에 문을 열 수밖에 없었고, 일본과 조선 또한 더 이상 폐쇄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일본은 이 충격에 개혁으로 응답했고, 조선은 저항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로 인해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그 결과는 조선의 식민지화와 일본의 제국으로의 도약이라는 극단적인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조선의 개화 시도를 비교를 비교하며 그 배경과 결과를 되짚어보겠습니다. 메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