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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 속 리비우스: 제국의 역사 서술자, 진실과 선전의 경계로마사 2025. 9. 13. 12:34
로마사 속 리비우스: 제국의 서사를 맡은 역사가
로마사에서 리비우스(Titus Livius, 기원전 59~서기 17)는 단순한 역사가를 넘어, 제국의 서사를 정립한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그는 카이사르 내전의 혼란이 막 끝나고, 아우구스투스가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로마사>라는 방대한 저작은 건국 신화에서 그의 동시대에 이르는 수백 년의 역사를 연대기적으로 다루며, 로마가 작은 도시국가에서 지중해 세계의 제국으로 성장한 과정을 보여준다.
리비우스는 사실보다는 이야기에 무게를 두었다. 그는 전승된 설화와 전통을 풍부하게 인용하며, 독자들에게 로마적 정신과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려 했다. 그래서 그의 글은 학문적인 사료 비판보다는 문학적 서사에 가까웠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아우구스투스 시대와 잘 맞아떨어졌다. 당시 제국은 혼란을 정리하고 '영광스러운 로마'의 이미지를 시민들에게 심어야 했고, 리비우스의 글은 이를 완벽히 뒷받침했다. 따라서 고대 로마사에서 그는 진실을 기록한 역사가이자 제국을 선전한 문필가라는 이중적 평가를 받는다.
로마사 속 리비우스: <로마사>의 서술과 의도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총 142권에 달하는 방대한 작업이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1권 10권, 21권 45권 등 일부만 전해지지만, 그가 추구한 방향은 분명하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가 걸어온 길에서 시민들이 본받아야 할 덕목과 교훈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예컨대 루크레티아의 자결 이야기는 사실 여부를 떠나 "개인의 정절이 공화정 수립의 동력이 되었다"는 교훈을 담는다. 호라티우스 형제의 결투는 "국가를 위해 개인이 희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런 사건들은 현대 역사학적 기준으로는 사실이라기보다 신화적 서사에 가깝지만 리비우스는 이를 통해 로마 시민에게 도덕적 모범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 방식은 아우구스투스의 정치적 의도와도 맞물려 있었다. 아우구스투스는 방탕했던 공화정 말기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며 '옛 로마의 순수한 정신'을 되살리려 했는데, 리비우스의 저작은 이를 지적, 문학적으로 뒷받침했다. <로마사>는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니라, 제국 건설의 이념적 토대로 기능했던 것이다.
로마사 속 리비우스: 진실과 선전의 경계
리비우스의 역사 서술은 진실과 선전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그는 특정 권력자에게 직접적인 아첨을 바치지 않았으나, 제국 체제를 비판하지도 않았다. 대신 공화정 시기의 영웅과 미덕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재건과 자연스럽게 연결 지었다.
예를 들어, 그는 카이사르의 독재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았지만, 공화정적 이상을 반복적으로 언급하여 독자들이 현재 체제와 비교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리비우스가 단순히 권력의 대변자가 아니라,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사료 검증에 엄격하지 못했고, 때로는 전통적 이야기들을 사실처럼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후대학자들은 그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직접 활용하기보다는, '로마인들이 스스로의 과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한다.
리비우스의 글은 결국 역사와 선전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단순한 과거를 아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역사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로마사 속 리비우스와 다른 역사가들의 비교
리비우스를 더욱 잘 이해하려면, 동시대와 후대의 다른 역사가들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먼저 살루스투스(Sallustius, 기원전 86~35)는 카이사르와 가까운 정치인이자 역사가였다. 그는 <카틸리나 전쟁>, <유구르타 전쟁>에서 간결하고 도덕적 비판이 강한 문체를 사용하며, 로마 정치의 타락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살루스투스가 현실 정치의 부패를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면, 리비우스는 오히려 영웅적 과거를 미화하며 도덕적 교훈을 전하는 데 집중했다.
또 다른 대비는 타키투스(Tacitus, 서기 56~120)와의 비교에서 드러난다. 타키투스는 <연대기>와 <사실들>에서 제국 황제들의 폭정을 기록하며 권력의 어두운 면을 폭로했다. 냉철하고 비판적인 그의 태도는 리비우스의 서정적이고 교훈적인 역사관과는 정반대였다. 리비우스가 제국의 정당성을 강조했다면, 타키투스는 제국 권력의 부패를 고발하며 공화정적 가치를 추억했다.
이처럼 리비우스는 문학적 교훈을 중시한 서사적 역사가, 살루스투스는 정치적 타락을 고발한 비판적 역사가, 타키투스는 권력의 본질을 분석한 냉철한 역사가로 나눌 수 있다. 이 비교를 통해 우리는 리비우스의 독창성과 동시에 그의 한계를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타키투스 석상 로마사 속 리비우스: 후대에 남긴 유산
리비우스의 영향력은 그의 시대를 훨씬 넘어섰다. 중세에는 그의 저작이 고전적 교양의 일부로 읽혔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마키아벨리 같은 사상가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를 읽으며 공화정의 이상과 권력 유지의 현실을 분석했고, 근대 정치사상 형성에 이를 반영했다. 또한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리비우스를 통해 로마 공화정의 덕목을 되새기며, 근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논의에 연결시켰다.
리비우스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 사회의 가치와 권력을 정당화하거나 비판하는 힘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진실과 선전 사이의 긴장 속에서 글을 썼고, 바로 그 긴장감 덕분에 그의 저작은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텍스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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