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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의 개성, 세계를 향해 열린 수도: 벽란도와 함께한 중세 동아시아의 국제도시
    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3. 23:44

    개성과 벽란도, 세계로 통하는 고려의 창

    한국사에서 고려는 '귀족의 나라'로 기억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쪽자리 인식일 뿐입니다. 고려는 단지 내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수도 개성과 외항 벽란도를 통해 세계로 나아간 중세 동아시아의 대표적 개방국가였습니다. 개성은 당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서 중국 송과의 교류는 물론, 거란, 여진,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오가는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핵심적 관문이 바로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벽란도였습니다.

    벽란도는 단순한 항구가 아니라 국제 무역항이자 외국 상인의 집결지였습니다. 특히 송나라 사신은 물론, 페르시아, 아라비아 출신의 무슬림 상인들까지 드나들며, 고려는 동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는 고려가 단지 한반도 내 왕조를 넘어, 세계사 속 중세 교역 체계의 한 축을 담당했음을 의미합니다.

     

    고려의 수출품, 세계를 매혹시키다: 고려청자, 인삼, 화문석

    고려가 국제적으로 위상을 떨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뛰어난 수출품이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고려청자는 당대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도자기로, 그 명성은 송나라 황제조차 탐낼 정도였습니다. 고려 청자의 푸른 비색(翡色)은 비취(翡翠)와 같은 신비로운 광택으로 '비색청자'라는 명칭을 얻었고, 문양, 조형, 유약 기술에서도 송나라나 요나라 도자기보다 한층 앞선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세계사적으로 고려청자는 당대 도자기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습니다.

    이슬람 세계의 유약 도자기, 중국 송의 백자, 흑유 도자기, 유럽 중세 도기의 초기 형태들과 비교할 때 고려청자는 예술성과 기술성을 동시에 갖춘 완성형 도자기였으며, 아라비아 상인들이 이를 모사해 페르시아 도자기에 푸른 유약을 적용하는 데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고려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대표 수출품으로 인삼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인삼은 약용식물 중 최고로 인정받았고, 고려 인삼은 중국 송, 금, 아라비아 상인들에게도 고급 약재로 거래되었습니다. 아라비아 기록에는 고려산 인삼을 '동방의 신비한 뿌리'로 기록하며, 중세 이슬람 세계와의 교역망 속에서도 고려 인삼이 유통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화문석은 고려 특유의 공예 기술로 만든 화려한 돗자리로, 왕실과 귀족뿐 아니라 외국 사신에게 하사품으로 주어졌고, 그 섬세한 공예 기술은 중국과 일본에서도 귀하게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고려의 수출품은 단순히 물품이 아니라 문화적 상징성과 고유성을 지닌 예술작품이자 의약 자원이었고, 이는 고려가 생산성과 문화적 창의성이 높은 고도로 발전된 문명국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아라비아 상인의 왕래, 고려의 국제성과 개방성

    무엇보다 세계사적으로 주목할 점은 아라비아 상인의 고려 방문 기록입니다. 고려 후기에는 아라비아 해상 무역 네크워크를 따라 남중국해를 지나 벽란도까지 도달한 이슬람 상인들이 존재했으며, 이는 실크로드의 해양 버전, '향신료 항로'의 동단에 고려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고려에서 청자, 인삼, 비단, 서적 등을 구입하고 향신료, 보석, 유리 제품, 금속 공예품 등을 교환했습니다.

    이는 고려가 단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중간 국가가 아니라 세계 교역망의 끝자락이자 새로운 문화 접점으로 기능했음을 증명합니다. 아라비아 상인들의 고려 방문은 세계사에서 중세 이슬람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가 실제로 만난 몇 안 되는 역사적 접점이며, 이는 교역을 넘어 과학, 종교, 언어,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다문화 시대의 전조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라비아 상인의 왕래 고려의 국제성과 개방성
    아라비아 상인들의 고려 방문은 중세 이슬람 문화와 동아시아 문화가 실제로 만난 몇 안 되는 역사적 접점이다.

     

    고려, 중세 동아시아의 국제도시를 설계하다

    고려는 중앙집권 체제를 갖춘 왕조였지만, 수도 개성과 항구 벽란도를 통해 외세를 받아들이는 개방성을 유지했습니다. 이는 같은 시기 중국 송나라가 해상 무역에 적극적이었고,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교역로를 개척했으며, 중동에서는 아바스 왕조가 해양 무역을 확장해 나가던 시기와 맞물립니다.

    그 중심에서 고려는 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연결하는 문화 교류의 중간 거점이자 자립적이고 문화적으로 독창적인 문명국으로 세계사에 등장했습니다. 이는 고려가 세계적 시야를 갖춘 해양 문명과 접속한 국가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고려, 세계사와 만난 한국사의 주체

    고려는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일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세계와 연결된 문화 국가였습니다. 개성과 벽란도는 단지 수도, 그리고 무역항에 머문 것이 아니라, 문화, 기술, 철학, 물품이 오가는 문명의 통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서울이나 부산에서 국제 교류를 논하지만, 이미 1,000년 전 고려는 청자와 인삼, 공예와 사상으로 세계인과 소통한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개성이라는 수도와 벽란도라는 항구, 고려인의 자부심이 존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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