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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속에서 다시 보는 경주의 위상: 고대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통일신라의 수도
    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3. 19:35

    세계 10대 고도, 인류문명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세계의 역사에서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도시들은 단순한 인구 집합체를 넘어,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었습니다. 미국의 과학문화 웹사이트 라이브사이언스닷컴(LiveScience.com)은 2009년 '세계의 10대 고도(古都, ancient cities)'를 선정하여 인류의 문명사를 대표하는 도시들을 소개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단연 로마입니다. 기원전 8세기에 건국되어 기원후 5세기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로마는 단순한 도시 그 이상이었습니다. 법률, 군사, 건축, 상하수도 시스템 등 오늘날 서구 문명의 기초를 마련한 대제국의 수도였지요.

    그다음으로 꼽힌 곳은 아테네입니다. 기원전 5세기경 에게해 연안의 도시국가 중에서도 선도적 역할을 했던 아테네는 고대 민주주의와 철학의 발상지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사상가들이 등장했고, 올림픽의 기원이 된 체육문화도 이곳에서 자라났습니다. 이어서 선정된 도시는 콘스탄티노플, 오늘날의 이스탄불입니다. 4세기부터 15세기까지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로서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 역할을 했으며, 서로마 제국 멸망 이후 세계 최고의 도시로 명성을 누렸습니다.

    그 외에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바빌론, 잉카 제국의 고지대 수도 쿠스코, 아스테카 제국의 중심지 테노치티틀란, 중국 당나라의 장안으로 번성했던 시안, 북미 대륙 미시시피강 유역의 인디언 도시 카호키아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 도시는 각기 다른 대륙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문명을 꽃피우며 인류사의 전환점을 이끌었습니다.

     

    콜로세움 고대 로마 세계 10대 고도
    로마의 콜로세움. 로마는 세계 10대 고도에서 첫 손가락에 꼽힌 도시이다.

     

    리스트에는 없지만 그에 못지않은 경주 

    이 화려한 목록 속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경주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경주는 조용한 지방 도시로 인식되지만 통일신라 시기였던 8세기부터 9세기까지 이 도시는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초거대 도시였습니다. <삼국유사>에는 경주에 17만 호(戶)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하나의 호를 평균 5명으로 계산하면 약 85만 명에서 90만 명가량이 거주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물론 이 수치를 둘러싸고 다양한 학문적 논쟁이 존재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호당 인구가 5명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당시 경주의 식량 생산력과 보급 체계로는 90만 명을 부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반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세기 경주의 도시 규모가 세계적 기준에서 매우 이례적인 수준이었다는 사실은 거의 이견이 없습니다. 당시 유럽의 주요 도시조차도 인구 10만 명을 넘기기 힘들었으며, 중세 후기까지도 유럽 대부분의 도시는 경주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경주는 왜 세계의 고도 목록에 들지 못했을까?

    그런데 경주는 왜 세계의 10대 고도 목록에 들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히 도시의 위상이 낮아서가 아닙니다. 이는 서구 중심적 시각에 기반한 세계사 서술의 한계와도 연결됩니다. 실제로 세계 고고학계나 역사학계에서 동아시아 고대 도시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더욱이 경주는 유럽 문헌에 기록된 사례가 적고, 한국어와 한자 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제약이 많다 보니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또한 경주는 정치 중심지이자 종교.문화의 융합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처럼 '팍스 로마나' 같은 대외적 이미지가 덜 부각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불국사와 석굴암, 황룡사와 첨성대, 월성과 안압지(동궁과 월지) 같은 유적들은 당시 신라가 지닌 기술력, 미학, 도시계획 능력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 모든 유산들은 경주가 단지 한 나라의 수도에 그치지 않고, 당대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했다는 증거입니다.

     

    경주 불국사
    경주는 8세기부터 9세기까지 17만 호가 거주하는 초거대 도시였다. 사진은 경주 불국사

     

    통일신라 경주,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중심

    당시 경주는 일본과 당나라 사절이 왕래하던 국제 도시였습니다. 바닷길을 통해 중국 산둥반도나 양쯔강 하류와도 연결되었고, 남해안을 거쳐 동남아와도 교역이 이루어졌다는 연구도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불교 문화는 인도를 거쳐 중국을 통해 전해졌지만, 경주에서는 자체적인 철학과 미학으로 재해석되어 독창적인 불교 예술이 창조되었습니다. 특히 석굴암과 불국사의 조형성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유산이며, 당시 경주의 기술 수준과 예술 감각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통일신라는 당과 일본 사이의 문화교류를 중개하는 매개자 역할도 했습니다. 이는 경주가 단순히 한반도 내 수도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화 흐름 속에서 허브 역할을 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경주의 존재가 없었다면 일본의 아스카 문화와 나라 시대 문화는 지금처럼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우리가 경주의 가치를 세계에 알려야 할 때

    이제는 경주를 단순히 신라의 고도, 국내 여행지 정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경주는 세계사 속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고대 도시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 역사적 가치와 잠재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로마나 아테네처럼, 경주도 그 도시만의 서사를 세계 시민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외국 관광객들도 불국사, 석굴암, 양동마을 등을 찾아와 경주의 유산에 감탄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체계적인 콘텐츠 개발과 국제 홍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세계 10대 고도'라는 외부의 평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경주의 세계사적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주는 한국사 속 고도인 동시에, 세계사 속 고도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유산은 물리적 유산을 넘어 이야기와 맥락이 함께 전달될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니며, 경주는 그 이야기를 충분히 품고 있는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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