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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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 속 마리우스: 평민 장군이 연 군사혁명의 길로마사 2025. 9. 23. 23:59
로마사와 마리우스: 평민 출신 장군의 등장로마사에서 마리우스는 신인(노부 출신이 아닌 인물)으로 정치 무대에 등장한 보기 드문 사례였다. 기원전 2세기 후반의 로마는 정복 전쟁의 확대와 경제적 격차 심화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귀족과 평민의 갈등은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실패 이후 더욱 날카오워졌고, 외부에서는 유그르타 전쟁과 게르만족의 침입이 로마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아르피눔 출신의 지방 평민 가문에서 태어난 마리우스가 로마 정치 무대에 부상했다. 그는 귀족 혈통이 아닌 농민 출신이었으나, 젊은 시절부터 군사적 재능을 드러내며 명문 귀족들의 눈에 띄었다. 특히 카이사르 가문과의 연계를 통해 정치적 후원을 확보하면서, 그는 점차 평민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했다. 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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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 속 술라: 독재관을 통해 본 공화정의 몰락로마사 2025. 9. 20. 06:32
로마사와 술라의 등장: 내전과 권력 다툼의 시대로마사에서 술라(Lucius Cornelius Sulla)는 공화정 말기 가장 논쟁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다. 기원전 2세기 말, 로마는 지중해 패권을 차지한 대제국으로 성장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심각한 균열에 시달렸다. 정복 전쟁의 전리품은 원로원 귀족과 신흥 지주에게 집중되었고, 소농민은 몰락해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했다. 또한 이탈리아 동맹시들은 로마 시민권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켰다. 이러한 불안정 속에서 마리우스와 술라 같은 장군들이 정치 무대에 오르며 군사력이 정치 권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열렸다. 술라는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젊은 시절은 가난하게 보냈고, 전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출세했다. 특히 유구르타 전쟁과 동방 원정에서 군사적 능력을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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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와 폼페이우스: 대제국을 설계했으나 권력에서 밀려난 장군로마사 2025. 9. 12. 22:46
로마사와 폼페이우스: 젊은 장군의 화려한 부상로마사에서 폼페이우스는 일찍이 두각을 드러낸 비범한 장군이었다. 그는 기원전 106년, 이탈리아 중부 피켄툼 지방의 기사 계급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역시 장군이었기에 군사적 경험을 어린 시절부터 접할 수 있었고, 젊은 시절부터 병사들을 지휘하는 재능이 남달랐다. 내전에서 술라 편에 가담하면서 그는 운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술라가 원로원 귀족 세력을 대표했다면, 폼페이우스는 그의 충실한 후계자로서 활약하며 빠르게 군사적 명성을 얻었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질서와 규율이 철저해 병사들 사이에서 두려움과 존경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당시 로마사에서 "소년 장군"이라 불리며 카이사르가 떠오르기 전까지 가장 주목받던 차세대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의 명성은 전쟁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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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죽음: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브루투스의 칼끝로마사 2025. 7. 28. 14:33
로마사 최후의 칼날: 카이사르를 찌른 브루투스는 배신자였나 영웅이었나?로마사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암살은 단순한 한 정치인의 죽음이 아니라, 공화정의 몰락과 제정의 서막을 알리는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특히 이 사건에서 가장 극적인 인물은 카이사르를 찌른 23인의 원로원 의원들 가운데 한 명, 브루투스다. 단지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가 카이사르의 절친한 동료이자 사실상 '정치적 아들'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그의 칼끝은 곧 배신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과연 브루투스는 로마 공화정을 파괴한 배신자였을까? 아니면 공화정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호자였을까? 이 질문은 로마사를 단순히 외워야 할 연대의 흐름이 아닌, 오늘날에도 유효한 정치적 딜레마로 되살려준다.고대 로마사에서 브루투스는 공화정의 이상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