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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조선 세종의 집현전 - 지식과 권력의 갈림길
    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6. 19. 22:56

    지식과 권력의 관계 - 억압인가, 육성인가

    지식과 권력의 관계는 인류 문명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주제 중 하나이다. 지식은 권력의 정당성을 뒷받침하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에 도전하는 불씨가 되기도 한다. 중국의 진시황이 단행한 분서갱유와 조선 세종이 설립한 집현전은 이러한 권력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대조하는 두 역사적 사례이다. 하나는 사상의 다양성을 억압함으로써 권력의 절대성을 강화하려 했고, 다른 하나는 학문과 토론을 장려하며 국정 운영의 질을 높이고자 했다. 이 두 지도자의 선택은 각기 다른 문명 경로를 보여준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 제국의 통일을 위한 지식의 억압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강력한 황제였다. 그는 통일 이후 각 지역의 법과 제도를 표준화하면서, 정치적, 문화적 통합을 추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등장한 사건이 바로 분서갱유이다. 기원전 213년, 법가를 중시하던 진시황은 유가 사상가들이 정권에 비판적인 언행을 일삼자, 모든 유가 경전을 불태우고(분서), 이를 어긴 자들은 땅에 묻어 죽이는(갱유) 무자비한 정책을 시행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단지 책을 태우는 사건이 아니라, 지식을 향한 국가권력의 통제 시도였다. 그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군주를 비판하는 자들을 국가의 불온세력으로 간주했다. 그 결과, 역사와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지식 전통이 단절되었고, 진나라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했지만 동시에 사상적 다양성은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진시황은 지식의 통일을 통해 국가의 단일성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그 폐쇄성은 오히려 진나라의 조기 멸망(기원전 206년)을 앞당겼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 지식의 국가 자산화

    이에 반해 조선의 세종대왕은 지식을 억압이 아닌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활용한 군주였다. 15세기 초반, 그는 학문을 연구하고 제도 개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전문 관료 집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집현전을 부활시키고 적극적으로 육성하였다. 집현전은 단순한 연구기관을 넘어, 정치의 싱크탱크이자 지식 생산의 중심지였다.

    세종은 집현전을 통해 유학 경전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천문학, 의학, 음악, 법률 등 다방면의 실용학문을 연구하도록 장려하였다. 특히 집현전 학자들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문자 해독 능력이 제한적이었던 백성들에게 커다란 지식의 문을 열어주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세종은 국가는 백성의 중심이라는 철학 아래, 지식은 궁궐 안에 갇혀 있어선 안 된다고 보았다. 지식의 공유와 보급은 곧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었다.

     

    경복궁 내 수정전. 세종 시대에는 집현전으로 불렸다.
    경복궁 내 수정전. 세종대에는 집현전으로 불렸다. 집현전은 단순한 연구기관을 넘어, 정치의 싱크탱크이자 지식 생산의 중심지였다.

     

    분서갱유와 집현전의 비교 - 권위주의와 개방주의의 분기점

    중국 진시황의 분서갱유와 조선 세종의 집현전은 지식에 대한 권력자의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진시황은 지식을 권력의 위협 요소로 간주했고, 따라서 억압과 소각을 택했다. 반면 세종은 지식을 권력의 동반자이자 국가 발전의 원천으로 삼았다. 진시황은 과거의 기록이 현재를 흔든다고 두려워했지만, 세종은 과거의 지혜가 현재를 풍요롭게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인식 차이는 결과적으로 국가의 흥망과도 연결된다. 진은 분서갱유 이후 이념적 기반이 약해졌고, 민심과 자식인의 이탈로 단명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은 세종 이후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유교 정치의 황금기를 누리며, 유교적 이념에 바탕한 안정적인 행정과 문화 발전을 이루었다. 이는 지식의 개방성과 공유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현대를 향한 시사점 - 지식의 자유와 국가의 미래

    오늘날에도 지식과 권력의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 어떤 정권은 언론과 학문을 통제하려 하고, 또 어떤 사회는 지식인의 목소리를 권력의 감시자로 존중한다. 진시황과 세종의 사례는 이처럼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지식을 억압하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퇴보하며, 지식을 키우고 나누는 권력은 오히려 존경을 받는다.

    정보화 시대인 지금, 집현전의 정신은 더욱 절실하다.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지식의 흐름을 장려하는 사회, 그것이 곧 지속 가능한 발전과 민주주의의 초석이다. 반대로, 진시황의 분서갱유처럼 의견과 사상을 불태우는 시대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할지는, 결국 지식과 권력 사이의 건강한 긴장과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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