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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타이 유목문화와 신라의 기마 전통 - 말 위에서 문명을 만들다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6. 14. 17:32
스키타이 유목문화, 말에서 태동한 초원의 제국
스키타이 유목문화는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발생한 가장 역동적인 기마 문명 중 하나로, 기원 전 9세기경부터 흑해 북방과 남러시아 일대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키타이의 문화는 '말'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스키타이인은 말 위에서 이동하고, 말과 함께 싸우고, 말을 매장할 만큼 생애의 전 과정에서 기마 문화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었다.
스키타이의 무덤 유적인 쿠르간(Kurgan)에서는 잘 보존된 말의 유해와 정교한 마구, 황금 장신구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이들의 장신구에는 동물 투쟁 모티프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유목민의 생존 본능과 자연에 대한 관철력이 융합된 독특한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말은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전사로서의 위엄, 귀족의 상징, 경제의 중심축으로 기능하였다.
스키타이는 국가 조직이 명확하게 중앙집권화되지는 않았으나, 부족 연맹체 중심으로 유연하게 형성되었다. 그들의 통치는 말 위에서 이뤄졌으며,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그들을 "말을 타고 전투를 벌이며, 천막에서 태어나 천막에서 죽는 민족"이라 기록했다. 이처럼 스키타이는 기마 민족 특유의 기동성, 유연한 조직력, 실용 중심의 문화로 초원을 장악한 문명의 중심이 되었다.
신라의 기마 전통, 삼국시대를 질주하다
신라의 기마 전통은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를 배경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다. 특히 5~6세기 고분에서 출토된 기마인물형 토기와 금동 말갖춤 유물들은 신라가 말과 밀접한 문화를 형성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경주의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天馬圖)가 새겨진 말안장 덮개는 기마 전통의 예술적 승화이자, 신라 왕실이 말에 부여한 상징적 가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신라는 고구려, 백제와 함께 삼국 경쟁 구도 속에서 군사력을 강화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기병 전술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특히 신라의 기병은 빠른 기동성과 집중 타격 능력을 통해 전장에서 압도적인 전략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한 전투력을 넘어서, 왕실의 권위와 국가의 확장성을 가능케 한 힘이었다.
신라는 경주 일대를 중심으로 말 사육을 장려하고, 말을 신성시하는 사상을 공유했다. 특히 김유신 장군의 설화 중에는 그가 말과 교감하며 전장에 나서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말이 단지 무기적 수단을 넘어, 영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천마도가 새겨진 말안장 덮개(경주 천마총 출토) 기마 문명이 남긴 예술과 장례문화의 유사성
스키타이 유목문화와 신라 기마 전통은 예술과 장례 풍습에서도 흥미로운 공통점을 보인다. 스키타이의 쿠르간에서는 황금으로 만든 동물 형상 장식품이 대거 발견되었는데, 이는 권력자 또는 전사 계급의 상징물이자, 자연과 조화를 이룬 유목 예술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이와 유사하게, 신라 왕릉에서는 천마도가 그려진 안장, 금동관, 장식품 등이 함께 출토되어 권력과 예술, 종교가 혼합된 장례문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동물 문양의 활용이다. 스키타이의 황금 장식에는 사슴, 표범, 독수리 등 다양한 동물의 역동적 형상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자연과 생명의 윤회, 권력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신라 금관에도 비슷한 자연주의 문양이 등장하며, 특히 나뭇가지처럼 뻗은 수지형(樹枝形) 장식은 신라가 자연의 정령과 조화를 이루려 했음을 암시한다. 양자의 예술은 인간, 동물, 자연의 관계를 조화롭게 표현하려는 공통된 미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서 유목문화의 교차로에서 만난 흔적들
스키타이 문화는 유라시아 전역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이들의 기마 생활 양식은 서쪽으로는 게르만, 동쪽으로는 흉노, 돌궐, 유연 등을 거쳐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까지 확산하였다. 이러한 문화 확산의 흐름 속에서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등 북방계 한국 고대국가들은 유목적 요소를 받아들였으며, 신라도 이 흐름 위에서 성장한 문화였다.
실제로 신라의 초기 귀족 문화에는 북방 유목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구의 형태, 고분의 구조, 전쟁 전술 등에서 유목 민족과의 문화적 연계성이 발견된다. 고구려를 통해 유입된 북방계 기마 기술과 군사 시스템은 신라의 체제 강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나 백제나 가야에 비해 보다 정예화된 기병 중심의 군 조직을 갖춘 데는 이와 같은 문화 교류가 밑바탕이 되었다.
더 나아가, 불교가 도입된 후에도 신라의 기마 전통은 단절되지 않고, 불교적 세계관과 융합되었다. 천마는 단순한 말이 아닌, 하늘과 인간 세계를 잇는 신성한 존재로 재해석되었고, 이는 기마 문명이 신라 사회에 뿌리 깊이 스며들었음을 방증한다.
말 위에서 문명을 만든 두 세계, 그 교차의 의미
스키타이와 신라는 모두 말 위에서 문명을 만든 기마 민족이었다. 스키타이는 정주 문명과는 다른 방식으로 초원을 지배하며, 유연한 조직과 강력한 기동성을 통해 광활한 영역을 통치했다. 신라는 반대로, 유목 요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정주 국가 체제 속에 효과적으로 통합함으로써 독창적인 정치, 군사, 예술 문화를 발전시켰다.
양자 모두 기마를 중심으로 사회 조직과 예술, 의례 체계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말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문명을 지탱한 중심축이었다. 특히 한반도에서 말은 이동과 정복, 상징과 정신성을 동시에 내포한 존재였으며, 오늘날 신라의 고분 유물과 스키타이의 황금 유물은 이러한 기마 중심 문명이 남긴 귀중한 유산이다.
결국 세계사 속에서 스키타이와 신라는 기마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동서 문화의 유사성과 독자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이라는 광대한 공간 안에서, 문명이 반드시 도시나 강을 중심으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초원의 바람과 말발굽 위에서도 위대한 문명이 탄생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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