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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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몰락, 조선의 운명을 흔들다 - 제국의 붕괴와 한반도의 격동기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6. 20:25
청나라의 몰락 - 동아시아 질서의 붕괴 신호청나라의 몰락은 단순히 한 제국의 붕괴가 아니라 조선 사회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 질서의 근본적인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의 침입과 내적인 부패, 농민 반란, 그리고 결국에서는 신해혁명(1911)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은 17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 질서를 주도해온 청의 권위를 무너뜨렸습니다. 청나라의 위상은 오랫동안 조선에 정치적, 문화적 기준점이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 멸망 이후 청을 새 세계질서의 중심으로 받아들이며 '사대외교'를 펼쳐왔고, 군사적 보호와 문화적 위계를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아편전쟁(1840) 이후 청이 연이어 서양에 패배하면서 조선 지식인 사회 내에서도 '중화(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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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vs. 조선의 개혁, 왜 그 결과는 달랐는가? _ 일본과 조선,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갈라지다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1. 22:07
동아시아를 덮친 문명의 충격, 양국의 선택19세기 중반, 동아시아는 격랑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1853년 미국의 페리 제독이 일본 에도만에 흑선(黑船)을 끌고 나타나 개항을 요구한 사건은 동아시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습니다.중국은 아편전쟁(1840) 이후 서구 열강에 문을 열 수밖에 없었고, 일본과 조선 또한 더 이상 폐쇄적인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일본은 이 충격에 개혁으로 응답했고, 조선은 저항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로 인해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고, 그 결과는 조선의 식민지화와 일본의 제국으로의 도약이라는 극단적인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조선의 개화 시도를 비교를 비교하며 그 배경과 결과를 되짚어보겠습니다. 메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