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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마사와 페르시아: 고대 로마사를 흔든 두 제국의 전쟁사
    로마사 2025. 8. 25. 23:59

    로마사와 페르사아의 맞대결, 세계사의 축이 되다

    로마사에서 가장 긴 전쟁사를 꼽으라면, 단연코 페르시아와의 대립이 중심에 놓인다. 고대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한 이후, 동쪽에는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가 거대한 장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아 두 제국의 대결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동서 문명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세계사의 중심축이었다, 로마가 공화정 말기부터 제정 초기까지 팽창을 거듭할 때, 갈리아나 카르타고와의 싸움은 지중해 패권을 다지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와의 충돌은 다른 차원이었으니, 이는 군사적 경쟁을 넘어 정치, 외교, 종교, 문화가 얽혀 수 세기에 걸쳐 이어진 거대한 투쟁이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에서 승리를 거둔 뒤 동방 원정을 꿈꾼 것도, 아우구스투스가 파르티아와 외교전을 벌인 것도 결국 이 대결 구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처럼 로마사 속에서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단순한 지역적 충돌이 아니라, 고대 로마사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였다.

     

    파르티아와의 전쟁: 로마의 좌절과 교훈

    로마사 초기 동방 전쟁의 핵심은 파르티아와의 대결이었다. 특히 트라수스의 카르헤 전투(기원전 53년)는 로마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삼두정치의 일원이었던 크라수스는 부를 과시하기 위해 동방 원정을 선택했지만, 파르티아 기병의 유연한 전술에 무너져 로마군은 2만 명이 전사하고 1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이는 로마 군단이 기병 전술에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치욕적인 패배는 동시에 로마 군사체제의 변화를 촉발했다. 이후 로마는 기병과 궁병을 보강하며 군단의 융통성을 높였고, 외국인 보조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고대 로마사의 전개 과정에서 파르티아 전쟁은 '승리의 역사'라기보다는 '좌절과 교훈의 역사'였다. 하지만 로마는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다. 아우구스투스는 전쟁 대신 외교적 협상을 통해 파르티아로부터 전쟁 포로와 군단기를 되찾으며 명예를 회복했다. 이는 무력보다 협상이 때로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였다.

     

    로마사 초기 동방 전쟁의 핵심은 파르티아와의 대결이었다. 사진은 파르티아의 유물
    로마사 초기 동방 전쟁의 핵심은 파르티아와의 대결이었다. 사진은 파르티아의 유물

     

    사산조 페르시아와의 격돌: 제국의 체력을 소진하다

    로마사에서 파르티아를 계승한 사산조 페르시아는 훨씬 더 강력한 적이었다. 사산 왕조는 3세기부터 로마 동부 국경을 끊임없이 위협했고, 로마 황제들조차 직접 전장에 나서야 했다. 특히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샤르푸 1세에게 생포된 사건은 로마의 자존심을 크게무너뜨렸다. 이후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동방 국경 전쟁은 로마 제국의 국력을 갉아먹는 고질병이 되었다. 고대 로마사가 군사, 행정 체제를 개혁하는 배경에도 동방 전쟁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동로마 제국은 사선조와의 전쟁을 이어갔고, 서로마가 쇠락한 후에도 이 대립은 계속됐다. 특히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기와 7세기 헤라클리우스 황제 시기에는 사산조와의 전쟁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양 제국은 국경 지대에서 도시와 요새를 빼앗고 빼앗기는 소모전을 벌였고, 그 결과는 쌍방의 피폐였다. 이 치열한 싸움으로 두 제국은 모두 국력을 크게 잃었고, 결국 이슬람 세력의 급부상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로마사와 페르시아 전쟁의 역사적 의미

    로마사 속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단순한 패권 다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첫째, 이는 동서 문명의 경계에서 벌어진 가장 장기적인 국제전이었다. 오늘날 터키, 시리아, 이라크, 아르메니아에 걸친 국경 지대는 로마와 페르시아가 수백 년 동안 치열하게 맞부딪힌 전쟁터였다. 둘째, 이 대결은 두 제국의 정치, 군사, 종교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로마의 군단 개편, 요새 건축, 행정 구획의 강화, 기독교 공인 정책조차도 동방 전쟁과 무관하지 않았다. 셋째, 두 제국의 끝없는 전쟁은 역설적으로 제3세력의 부상을 가능하게 했다. 서로마가 몰락하고 사산조가 쇠퇴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슬람 제국이었다. 아라비아에서 등장한 새로운 세력은 양 제국이 소진한 틈을 타 세계사의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결국 로마사와 페르시아의 수백 년 전쟁사는 승리 없는 투쟁이자 새로운 질서의 길을 연 서막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고대 로마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끊임없는 패권 경쟁은 당대에는 위세를 과시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스스로를 약화시키고 새로운 세력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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