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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종교의 동아시아 전파와 조선의 반응 - 조선은 왜 받아들이고, 배척했는가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6. 6. 21:16
세계 3대 종교, 동아시아에 닿다
세계 3대 종교인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서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동아시아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이 종교들이 가진 공통점은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 경전을 기반으로 한 교리 체계, 인간 삶에 대한 포괄적인 해석입니다. 하지만 전파 경로와 전파 방식, 각 문화권에서의 수용 태도는 상이했습니다.
불교는 기원전 5세기경 인도에서 시작되어, 실크로드와 해상 교역망을 따라 중국을 거쳐 한국, 일본에까지 전해졌습니다. 기독교는 초기에는 동방교회 형태로 페르시아와 중국 당나라까지 진출하였지만,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는 16세기 이후 서구 제국주의의 진출과 함께 동아시아에 재등장합니다. 이슬람교는 7세기 아라비아에서 출발하여 빠르게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원 제국 시기 몽골과 함께 동아시아의 문턱까지 도달하였습니다.
이러한 종교의 확산은 단지 종교의 전파에 그치지 않고, 세계사적으로도 사상, 예술, 과학, 정치 구조에 영향을 주었고, 한국사 속 조선 왕조 또한 이 세계적 흐름 속에서 각기 다른 대응을 펼쳐야 했습니다.
불교의 전파와 조선의 유교적 재편
불교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에 뿌리내린 종교였습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 모두 불교를 국교로 삼고, 왕실과 귀족 중심의 국가 통치 이념과 결합시켰습니다. 고려에 이르러서는 불교는 정점에 달했으며, 대장경 조성, 팔만대장경 제작, 수많은 사찰과 탑의 건립 등에서 그 위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은 달랐습니다. 조선 건국의 주체들은 성리학을 국가의 중심이념으로 삼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불교는 철저한 개혁과 억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사찰은 지방으로 쫓겨나고, 승려는 도성 출입이 제한되었으며, 승과(僧科)는 폐지되었습니다.
조선은 불교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이는 조선의 성리학적 질서를 확립하려는 의도였으며, 불교의 교리나 문화보다도 그것이 유지하는 기득권 구조를 붕괴시키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슬람, 고려를 거쳐 조선의 그림자로
이슬람교는 13세기 고려와의 교역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반도에 전해졌습니다. 몽골 제국의 세계적 네트워크 속에서 이슬람 상인과 사신들이 고려 땅을 밟았고, 원나라를 통한 문화적 영향이 고려로 유입되었습니다. 개성에는 무슬림 거주촌이 형성되었고, '색목인'이라 불린 이슬람계 인물들이 고려 왕실과도 교류했습니다. 예컨대, 고관대작 중 일부는 무슬림의 후손이었고, 일부 관청에서는 아랍어 통역관이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으로 넘어오며 이슬람의 영향력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성리학의 체계 아래 비유교적 종교와 외래 문화는 배척의 대상이 되었고, 이슬람교 또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코란이나 이슬람 과학은 중국을 통해 간접적으로 일부 소개되었으나, 체계적으로 연구되거나 신앙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즉, 조선은 이슬람 문화를 하나의 지식으로는 인식했지만 종교로는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동아시아 전체의 공통적 특징이기도 하며, 일본과 중국 역시 1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에 대해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슬람교는 13세기 고려와의 교역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반도에 전해졌다. 사진은 이슬람 사원. 기독교, 조선의 경계를 넘다
기독교의 동아시아 전파는 16세기 말 예수회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본격화되었습니다. 마테오 리치 같은 인물은 중국에서 유교 경전과 기독교 교리를 연결해 지식인들의 흥미를 끌었고, 이는 조선에도 간접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선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18세기 후반, 청나라에서 서양 서적을 접한 조선의 실학자들과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수용은 독특하게도 선교사 없이 서학(西學)을 통해 전래된 경우로, 지식인 중심으로 시작되어 하층민에게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신분 차별과 제사 의식에 회의를 느끼던 사람들이 만민 평등과 영혼의 구원이라는 가르침에 감동하며 천주교에 귀의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정치적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사학(邪學)으로 탄압을 받았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수차례 대규모 박해가 이어졌고, 수많은 순교자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탄압 속에서도 천주교는 점차 뿌리를 내리며, 19세기 말에는 개신교와 함꼐 조선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한 축으로 성장했습니다.
조선의 대응, 세계사 속에서 읽다
세계사적 시선으로 조선의 대응을 보면 흥미로운 이중성이 드러납니다. 하나는 유교 이념을 통해 타 종교를 철저히 배척하거나 통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교나 기독교에서 새로운 윤리나 지식을 받아들였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이러한 태도는 폐쇄성과 개방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시대와 권력의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변해갔습니다.
불교를 억제하면서도 불화를 보호하고, 기독교를 탄압하면서도 서양 과학과 의학을 일부 수용하며, 이슬람 문화를 배제하면서도 천문, 지리 지식은 간접적으로 흡수했던 조선. 이는 단지 보수적인 전통 사회의 모습이 아니라, 외래 문명과 종교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에 대한 동아시아적 고민이 응축된 결과였습니다.
종교는 경계를 넘어 흐른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3대 종교가 모두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불교 사찰과 천주교 성당, 이슬람 사원이 한 도시 안에 존재하며, 각 종교가 문화와 윤리에 끼친 영향은 우리의 삶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조선이 경험한 이 종교들과의 만남은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21세기 세계시민으로서 우리가 종교적 다양성을 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되묻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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