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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 유라시아 교역의 비밀을 품다세계사 속의 한국사 2025. 5. 1. 06:37
로만글라스란 무엇인가 - 로마제국의 유리기술과 그 전파 과정
로만글라스(Romanglass)는 고대 로마제국에서 발달한, 유리 제조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이 유리제품들은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고대 로마의 첨단 기술력과 당시의 세계사적 교역망을 반영하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고대 로마는 동지중해의 유리 제작 기술을 계승해 더욱 정교한 유리 공예품을 만들어냈고, 이러한 유리제품은 이후 비단길(Silk Road)을 통해 극동 아시아까지 유입됩니다.
특히 신라와 가야의 고분에서 발견된 약 20여 점의 유리제품은 모두 로만글라스로 확인되며,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초에 제작되어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교역의 산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결하는 유의미한 사례로, 국제무역이 이미 고대에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신라 고분에서 발굴된 로만글라스 - 한국사 속 세계유산
황남대총, 금령총, 천마총, 서봉총 등 대표적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는 장식품 이상의 크나큰 가치를 지닙니다. 이 유리 기물들은 신라가 단순히 고립된 국가가 아니라, 세계사 속에서 활발한 국제교류를 경험한 왕국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가야의 옥전 M1호분에서도 로만글라스가 출토되었다는 점은 신라뿐만 아니라 가야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이하게도 이들 유리제품은 삼국 통일 이전 시기, 특히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반 사이에 집중적으로 제작되고 유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고대 동북아시아 국제관계사, 그리고 삼국시대 정치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로만글라스의 출토는 단순한 무역품 유입을 넘어, 당대 지배층의 국제적 안목과 정치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 로만글라스의 탄생 - 고대 유리공예기술 발전사
로만글라스는 오늘날의 유리기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기원전 1세기경부터 '대롱 불기' 기법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유리공예사에 있어 혁명적인 기술이었습니다. 긴 대롱 끝에 반액체 상태의 유리 덩이를 붙여 공기 압력으로 불어내어 다양한 모양의 그릇을 만드는 방식이었지요.
이 기술의 도입은 무색투명 유리의 생산 가능성을 열어주었고, 로마제국 전역은 물론 유럽, 서아시아, 심지어 동아시아 지역까지 로만글라스가 유통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기술력은 당시 고대 로마의 과학기술사에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성취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쇠퇴 이후 유럽은 잠시 유리기술의 침체기를 맞게 됩니다.
베네치아 유리와 무라노섬 - 유리공예의 르네상스
고대 로마 이후 유럽의 유리공예는 10세기경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다시 꽃을 피웁니다. 베네치아는 뛰어난 항구도시이자 중세 상업 중심지로, 유리기술 또한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13세기에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모든 유리공방을 무라노섬으로 이전시키고,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무라노섬의 유리공예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오신 분들도 꽤 있으실 거로 압니다.
이 무라노섬에서 제작된 유리는 근세 유럽의 미술사와 공예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에도 이탈리아 무라노섬은 세계적인 유리공예산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로만글라스의 기술적 전통은 비록 직접 계승되지는 않았지만, 유럽 유리공예의 원형으로 작용하며 후대 문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고대 로마 이후 유럽의 유리공예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다시 꽃을 피운다. 고대 동아시아와 유라시아 교역의 교차점 - 로만글라스의 역사적 의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로만글라스가 유라시아 교역망을 따라 동아시아에까지 전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고대에 이미 신라와 북조 간에 외교 및 상업적 네트워크가 존재했음을 입증해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즉 유리제품은 단지 미술품이나 생활용품이 아닌, 고대 국제정치사와 문화사를 엿볼 수 있는 창이 되는 셈입니다.
또한 로만글라스는 신라사 속 사회 계층 구조, 혹은 정치적 권위의 상징물로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래전에 TV에서 방영되었던 <미실>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시나요? 그 드라마에 로만글라스가 소품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역사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들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신라의 귀족 사회를 대변하는 소품으로서 로만글라스는 드라마에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답니다.
5세기 후반, 신라 고분에서 로만글라스가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현상은 당시 왕실 중심의 위계질서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으며, 이러한 까닭에 로만글라스는 고고학적으로도 매우 가치가 높은 사료입니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잇는 이 작은 유리 조각은 한반도 고대사 연구에 깊은 영감을 주는 존재인 것이 틀림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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